개인의 책임을 말하는 이들에게


사고가 난 현장은 내가 근무하는 회사 바로 앞이며, 인근 흡연구역 중 드물게 편의점과 맞붙어 있는 곳이라 테크노밸리 서편에 입주해 있는 회사의 흡연가들의 메카와 같은 곳이다. 하루에도 서너번씩 지나다니는 길이고, 밥먹고 식후땡하는 곳이라 본의 아니게(나는 비흡연자 이지만, 담배피는 친구, 동료가 많은 고로) 사고 현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편이다. 사고 당시에도 현장 근처에 있어 아마 시중에 떠도는 일론들에 비하여 내가 조금은 비교적 정확하게 사건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개 이런 참사는 한 가지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지 않고, 여러 요인들이 불운하게 동시 다발적으로 작용하여 벌어진다. 하나 하나 따져볼까. 우선 '삼십여명의 사람들이 그 곳에 한꺼번에 올라가지 않았다면'이 있을 수 있다. 또한 '현행법에 따라 안전요원을 배치했다면'은 어떨까. '환풍구에 '추락위험'이나 깊이가 20m라는 작은 사인 하나만 있었다면?', 또 '주관사에서 무대 위치를 멋대로 변경하지 않고 소방방재청에 신고한대로 환풍구를 뒤에 두고 무대를 설치했다면?', 아니, '무대를 변경했을 때 현장실사를 통해 환풍구가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여 부피는 크고 가벼운 구조물을 얹어두어 차단했다면' 어땠을까.'환풍구 덮개가 규정대로 결속되었고, 지탱하는 H빔이 규정대로 좀 더 튼튼했더라면', '야외 공연은 관람객이 3,000명 이상이 되어야만 신고를 하게끔 되어 있는 현행 법규정이 이번 경우처럼 3,000명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공연 면적이 길고 좁아 과밀될 수 있는 경우에도 신고를 해야만 했었더라면'.....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단 한 개 만이라도 시간을 되돌려 뒤바꾼다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는 논란이 되는 원인, '삼십여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환풍구에 올라갔다'는 사실에 대해 짚어보고 싶다. 사고가 난 환풍구의 높이는 언론 보도에 의하면 1.5미터 정도다. 아마 포털에 올라간 사람의 잘못이라고 댓글을 쓴 사람들도 1.5미터면 쉽사리 올라갈 수 없는 높이이므로, 꾸역꾸역 안간 힘을 써가며 올라가지 말아야 할 곳에 올라갔다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환풍구는 횡으로 화단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시작점으로 갈 수록 바닥의 계단구조로 인해 더 용이하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아마 화단의 어디쯤은 어느 정도의 신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발 하나 올려두고 순식간에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내 주변에 사고 현장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위험에 대한 추구/회피 성향을 떠나서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그 때 흡연구역 방향에 있었다면 안올라갔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고. 그런데 정작 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사고자들을 평소에 자기가 얄밉게 생각했던 '무임승차자'들에 투사하여 "자기들 책임이지"라는 관점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 축제 때, 아이돌이 오면 앉아서 보는 사람들보다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잘 보겠다고 위험천만하게 구조물을 타고, 담장을 타고 올라가서 보는 어린 학생들, 관람료, 입장료 덜 내겠다고 꾸역꾸역 봉쇄된 공간으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그들과 유사한 감정을 투사하다보니, 나중에는 '걸그룹 무대를 보고 있었으니 삼십여명이 한꺼번에 올라가서 발을 구르고 방방 뛰었을 것'이라는 소설을 쓰는 사람도 생기는 듯 하다.


 차라리 큰 행사였다면 경계심이 더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판교 근무자들 중 다수는 나처럼 당일에 무대 설치된 것을 보고야 '아 뭐 하나보다', 라고 비로소 알았을 만큼 작은 행사였다. 그저 뭐 하는 줄도 모르고 담배피러 왔다가, 어디서 들어본 노래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모여있으니까 잠깐 연예인 얼굴이나 보고 가지, 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신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난리법석의 축제 때의 학생이 아니라, 그저 그 근처 회사에서 일하다가 바람 쐴 겸, 담배필 겸 나와있던, 그 공간을 너무나 잘 아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사고자들의 나이대와 신분이 증명한다. 누구라도 발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그 공간을 너무나 잘 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되려 그 공간 밑에 십수미터 깊이의 지하 공간이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원인 제공자는 그 환풍구에 올라간 사고자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그 날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사고자들의 의식수준 문제라기보다는 애초부터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상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 날 그 시간에, 사고자 포함 그 현장 반경 근처 사람들 100명과 전혀 다른 사람 100명이 있었다고 해도, 아마도 벌어졌을 사고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고의 원인과 사고의 결과를 분리해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고가 발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개인이 단지 그 정도로 부주의하다고 해서 그 결과가 한꺼번에 열여섯명이 목숨을 잃고, 열한명이 생사를 헤매도 되는 이런 경우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며, 발생했다면 재발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 당연하다. 이 사고는 취객이 무단횡단을 하다 차에 치여 죽은 사고가 아니다. 그런 사고는 시스템을 아무리 잘 보완한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사고다. 그러나 이 사고는 다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짜임새 있었다면 막을 수 있던 사고였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언론이 그 '상수'를 다른 '변수'(위에 말한 다른 사고 원인들)로 미리 감지하지 못한 시스템의 허점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고, 주관사는 사죄를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모두를 마음아프게 했던 행사 담당자도 그 사실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선량하고, 양심적인 사람임을 확신한다. 가시적인 법적 잘못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더 치밀했다면, 조금 더 고민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그런 죄책감이 그를 옭아맨 것이다. 개인이 조금 더 고민하지 않았다고 해서, 개인이 좀 더 영리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고 해서 삼십명이 죽거나 다친 이 사고에 과연 허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사고 원인들 중 단 한 두가지라도 좀 더 준비된 상황이었다면 행사 담당자  개인의 역량과는 무관하게 위험 감지가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 유족들의 담당자 선처 호소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번 사고를 전적으로 시스템의 문제이고 사고자는 일방적인 희생자의 프레임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스템의 허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이상, 개인은 애도를, 국가기관과 언론은 각 주체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대고 개인의 책임을 운운하며 오바한다는 관점, 그리고 이게 압도적인 여론이라면 되려 이것은 이 시스템을 그대로 두라는 압박이 아닌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기회를 놓칠까봐 나는 두렵다. 영국의 힐스보로 참사 당시 초기 여론은 '무질서한 훌리건들의 잘못으로 벌어진 어이없는 사고'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도덕적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 지금의 영국이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여전히 힐스보로 참사의 기일이 되면 그날의 사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엉뚱한 곳에 세금쓴다'는 당신들의 분노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도 국가에게 보상하라고 하지 않았다. 국가가 한 것은 유족들이 장례도 치르지 못할까봐 지급보증을 선 것 뿐이고, 최종적으로 보상액을 비롯한 모든 비용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는 주관사에서 감당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말하는 이 '상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당신은 이어지는 아래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물론, 본인이 직접 보고 듣지 않은 사건사고에 대해 피상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나도 당시 사고가 어디서 났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시끌시끌해지더니 '사람들이 무슨 구조물에 올라갔다가 붕괴되서 사람이 추락했다'고 하길래 '어이구 포미닛이 뭐라고'라고 내뱉았다. 잠시 후에 나는 두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뱉은 말을 후회했고, 사망자가 십수명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사고 지점이 어디라는 곳을 알고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쓴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모두가 볼 수 있는 포털 댓글에, 페이스북의 유명 링크의 댓글에 올라와 있는 당신들의 그 댓글이 추천을 받고 여론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며, 유가족을 비롯하여 나와 같이 간접적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이유다. 심지어 나는 '그 정도 위험도 감지 못하는 유전자는 생존에 부적합한 유전자'라는 댓글도 봤다. 인류는, 모든 철학과 사상, 과학 기술, 사회 제도는 남들보다 못하다고 해서, 단지 남들 보다 조금 운이 없었다는 이유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까지 그렇게 치열하게 발전해 왔다. 당신들의 그 발화는 명백하게 반지성적이다. 더욱 참담한 것은 추천이 수 천이 되도록 반대수가 거의 없는 이 압도적인 여론이다. 


 올라간 사람들이 잘못이고, 시민 의식이 미개하여 이런 사건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어느 SNS에서 미국 방송 프로그램의 어느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일종의 일반인 몰래카메라였는데, 어느 레스토랑에서 자폐증세를 가진 아이(물론 아이와 부모는 연기자다)가 소란스럽게 주변인들에게 불편을 끼치며 식사를 하자, 미리 심어놓은 다른 연기자가 그 부모에게 이런 곳에 아이를 데려오면 어떡하느냐고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부모는 죄송하다고만 하고, 자폐증을 가진 아이의 소란이 계속되자, 연기자는 마침내 언성을 높이고 마는데, 이 때 주변의 시민들이 언성을 높이는 연기자를 함께 제지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연기자가 '내가 뭐 틀린 말 했냐'고 시비를 이어가자 참다못한 덩치 큰 젊은 청년이 그 연기자에게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그리고 마침내 연기자가 레스토랑을 떠나자 나머지 손님들이 자폐아와 그 부모에게 신경쓰지 말고 식사를 계속하라며 위로를 건네는 영상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처음 느꼈던 그 먹먹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탄탄한 공동체의식과 시민의식이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수 천만, 수 억의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면 누군가 확률적으로 반드시 불운을 짊어지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고는 내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에 불의의 사고로, 혹은 운이 나쁘게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일어났을지 모르는 그 불운을, 같은 공동체를 영위하는 다른 구성원이 짊어져 주었다는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선진 시민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당신들이 만약 정말 그렇게 되고 싶다면. 유가족들을 비롯해서 직, 간접적인 트라우마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 게시판이나, 정확하게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기사의 댓글란에 '올라간 사람들 잘못이지'라고 적기 이전에. 사망자를 애도하는 글 한 줄, 만약 장례식장이 가깝다면 잠시 들러 헌화라도 하는 것이 당신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선진 시민 사회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끝으로, 누군가의 동료이고, 어머니이고 아버지였던 사고자들. 고인이 되신 분들께는 삼가 명복을, 사경을 헤메는 이들에게는 빠른 쾌유가 있기를, 판교에 근무하는 동료로서 기도한다.




- 20141021 저녁 모 게시판에 썼던 글, 저장해둠




by 오후다섯시 | 2014/10/23 09:58 | my essays | 트랙백(1)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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